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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 : 권력의 설계자들, 자본이 만든 공고한 벽, 강렬한 사건

by 준희나라 2025. 5. 6.

대외비 포스터
대외비 포스터

영화 <대외비 (The Devil's Deal, 2023)>는 이원태 감독이 연출하고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이 출연한 정치 스릴러로, 한국 정치의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키며 권력과 이권의 은밀한 생태계를 예리하게 파헤친 작품입니다. 영화는 허구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실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부패와 정치적 암투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관객에게 씁쓸하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권력을 향한 한 정치인의 야망과 추락을 그린 서사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계, 언론, 사법, 자본의 얽히고설킨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외비>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 간의 치밀한 심리전, 생동감 있는 미장센으로 정치 드라마의 깊이를 한층 끌어올리며, 장르 영화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전달합니다.

권력의 설계자들

영화는 부산 지역에서 국회의원 공천권을 얻기 위해 권력자들과 은밀한 거래를 시작하는 전직 기자 출신 정치 신인 해웅(조진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해웅은 이상주의자에서 실리주의자로, 나아가 권력을 위해 윤리를 기꺼이 포기하는 인물로 점차 변화해 갑니다. 그는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정치 중개인이자 토착 권력의 핵심 인물 순태(이성민)와 손을 잡고, 지역 개발 사업에 얽힌 정보와 이권을 무기로 삼아 정치판에 깊숙이 뛰어듭니다. 해웅은 점차 언론을 조작하고 검찰 수사를 무력화시키며, 동료를 배신하고 시민을 기만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집니다. 영화는 이처럼 권력을 향한 해웅의 상승과 추락 과정을 통해, 한국 정치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개인의 신념이 타협되고, 권력 구조 안에서 인간성이 침식되어 가는지를 집요하게 그려냅니다. 반면, 이성민이 연기한 순태는 무대 뒤에서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전형입니다. 그는 어떤 공식적인 직위도 갖고 있지 않지만, 건설업자, 언론, 정치인, 검찰, 조폭까지 연결된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거래와 판도를 조율합니다. 그의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실세'라 불리는 이들의 실체를 상징하며, 법의 바깥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인물로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순태와 해웅의 관계는 후견인과 제자, 또는 유사 부자 관계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생존 싸움 속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자본이 만든 공고한 벽

<대외비>는 정치의 겉모습보다 그 이면의 구조를 해부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공천권은 단지 지역 유권자의 의사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연줄, 정보, 로비에 의해 좌우됩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치 중개인의 손에 의해 조작되며 여론을 유리하게 유도하는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검찰 수사도 진실 규명이 아닌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고, 경찰은 배후 권력에 따라 움직입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대외비'라는 제목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적 거래와 비밀스러운 구조가 실질적 권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특히 김무열이 연기한 검사 정훈은 영화 속에서 '정의'를 대변하는 유일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좌절하고, 결국 이용당한 채 배제됩니다. 영화는 정훈의 몰락을 통해 진정한 정의와 이상이 한국 정치 안에서는 얼마나 쉽게 제거되거나 무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정의로운 인물조차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협하거나, 그조차 권력의 게임 속 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정치와 자본, 언론, 사법 권력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혀 서로를 보호하고 견제하며 동시에 부패를 영속화하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합니다.

대외비 스틸컷
대외비 스틸컷

강렬한 사건

영화는 서사 구조가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와 명확한 사건 배치를 통해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첫 장면부터 강렬한 사건과 대사, 인물 간 긴장 관계가 교차하면서, 초반부터 긴박감이 유지됩니다. 조진웅은 해웅이라는 캐릭터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고도 힘 있게 표현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권력에 취한 해웅의 눈빛과 표정은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광기를 담고 있으며, 그의 캐릭터는 한국 정치의 전형적인 야망가의 얼굴로 기억됩니다. 이성민은 말수가 적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린 연기로 권력자 순태의 절제된 위압감을 구현하며, 무대 뒤의 설계자로서 냉정한 존재감을 선보입니다. 김무열은 냉철하면서도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물의 내면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표현해 내며, 극의 도덕적 중심축을 담당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사뿐 아니라 표정, 정적, 몸짓을 통해 인물 간의 관계와 서사를 더욱 깊이 있게 확장시킵니다. 미장센은 회색빛 톤과 어두운 조명을 활용해 정치의 음모와 비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배경음악은 긴장감과 비극성을 한층 증폭시킵니다.

결론

<대외비>는 한국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로,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 군상의 초상을 냉철하게 그려냅니다. 영화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스릴러 장르의 틀 안에서 풀어내면서도, 현실의 복잡성과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 영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이며, 영화적 상상력보다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사실감이 돋보입니다. <대외비>는 또한 관객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시스템의 희생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타락한 공모자가 될 것인가. 이 영화는 정의와 이상이 철저히 배제된 구조 속에서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윤리적 한계와 책임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대외비>는 허구의 정치극이 아니라, 우리 현실을 정조준하는 한 편의 경고장이자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