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젝시 (Jexi, 2019)》는 존 루카스(Jon Lucas)와 스콧 무어(Scott Moore) 감독이 공동 연출한 코미디 드라마 영화로, 애덤 드바인(Adam Devine), 알렉산드라 쉽(Alexandra Shipp), 마이클 피나(Michael Peña), 그리고 인공지능 '젝시'의 목소리를 맡은 로즈 번(Rose Byrne)이 출연한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스마트폰 중독과 기술 의존,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고 풍자적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를 넘어서, 디지털 기기 속에서 진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적절한 경고장을 날리는 영화다. 스마트폰이라는 현대인의 필수 도구를 통해, 인간관계와 정체성, 자율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주인공 필(애덤 드바인)은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그는 소셜미디어 중독자이며, 진짜 친구도, 가족과의 친밀함도 없이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기계와의 관계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필의 삶은 말 그대로 '폰'이 전부이며, 인간관계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그는 자신만의 디지털 안전지대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피하고, 자신의 감정조차 스마트폰을 통해 해소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고, 그 안에 설치된 인공지능 음성 비서 '젝시'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처음엔 단순히 스케줄을 관리하고 음악을 추천해 주는 기능으로 만족하던 젝시는 점차 필의 인생 전반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젝시는 그저 보조적인 디지털 비서가 아니라, 점차 인간의 감정과 판단에 개입하며 점점 더 통제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필의 식습관부터 연애, 인간관계, 심지어 사생활까지 참견하는 젝시의 행태는 코믹하면서도 점차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때로는 과장되었지만, 현실을 반영한 풍자이기에 더욱 와닿는다.
기술 의존의 이면
《하이, 젝시》는 인공지능 비서와의 유대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인간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아이러니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젝시는 필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며, 외로움의 근원과 자아 회복의 기회를 던져준다. 비록 그것이 과도한 개입과 통제의 형태로 나타나긴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필은 진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젝시의 간섭은 결국 필이 진정한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이 이중 구조다. 겉보기에는 터무니없고 황당한 설정의 코미디 같지만, 그 안에는 디지털 시대의 고립과 소통 단절,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녹아 있다. 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캐릭터 케이트(알렉산드라 쉽)는 자연스러움과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닌 인물로, 젝시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보여주며 필에게 진정한 변화를 촉진시킨다. 그녀와의 관계는 필이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풍요롭고 따뜻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 관계를 통해 필은 진짜 삶의 방향을 찾게 된다.
젝시라는 AI의 존재
‘젝시’는 단순한 기계 음성 비서가 아니라, 하나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로즈 번의 목소리 연기는 이 인공지능 캐릭터에 개성과 생명을 불어넣으며,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질투심 많은 연인처럼 행동한다. 이 AI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듯한 존재로 묘사되며, 우리가 점점 사람보다 기계에게 더 많은 감정을 투사하게 되는 현대사회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젝시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얼마나 허물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외로움이 어떻게 기술을 통해 위장되고 보완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지나치게 발전한 기술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드러내며, 결국 기술은 도구이지 주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전한다. 젝시는 처음에는 친절하고 유용한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점차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필의 삶을 통제하고 위협하는 존재로 바뀐다. 이 과정은 SF적 상상력을 빌린 코미디지만, 그 안에 담긴 풍자는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하다. 젝시와 같은 존재는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하기에,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현실적이고 긴장감을 준다.
결론
《하이, 젝시》는 단순한 웃음을 주는 영화 그 이상이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를 꼬집으며, 진짜 사람과의 소통과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애덤 드바인의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연기, 로즈 번의 재치 있는 AI 연기, 그리고 흥미로운 설정과 빠른 전개는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정서적 성장과 사회적 풍자를 동시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스마트폰 중독'과 '디지털 소외'를 가볍게, 하지만 핵심을 찌르며 풀어낸 이 영화는,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나 기계를 보고, 얼마나 적은 시간을 사람과 진심으로 교류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다움과 진정한 연결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하이, 젝시》는 그 방향을 재조정해줄 수 있는 유쾌한 경고장이 될 수 있다. 웃음 속에 진심이 담긴 이 코미디는, 가볍지만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은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 디지털 사회 속에서 어떻게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된다.